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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의 제조

등록일
2020.08.26


스타트업의 제조

조 환 철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니다. 멋있게 포장된 스타트업의 성공스토리를 생각하며 시작할 수는 있지만, 막상 전쟁 같은 시행착오들을 겪고 나면 버티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디어 하나로 대박을 터트렸다는 말은 흔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디어를 내는 일보다 그것을 구현해서 사업화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간혹 성공스토리로 소개되며 기대를 한껏 모았던 스타트업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사례도 대부분 성공스토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실패한 스타트업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만 통계 데이터를 통해 성공보다는 실패의 비율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대부분 스타트업의 실패 원인을 물으면 사업 부진이었다고 답을 하지만 사업 부진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인정받았지만, 제품의 양산에까지 성공적으로 이르지 못하고 시제품 단계에만 머물다가 폐업하는 경우도 많다. 근래에는 기업 지원 정책 예산이 넘쳐나 국가 지원만으로 시제품만 만들면서 매출 없이 수년째 운영되는 회사도 상당하다. 하지만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양산의 과정이 필요하고 성공적인 양산을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제품의 생산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 시제품의 제작


 1990년대 후반, 메디슨, 미래산업 등으로 점화된 벤처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쓴 적이 있었다. IMF의 충격이 한동안 나라의 경제를 얼어붙게 했지만, 인터넷이 실생활에 들어오면서 IT 업계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열기가 상당하였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지만 아르바이트로 벤처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직원이 워낙 없어서 생전 해본 적이 없던 기구 설계까지 직접 해야 했다. 몹시 어려운 설계는 아니었지만, 며칠 동안 고된 정신노동을 통해 설계도를 완성하였다. 나름 완벽한 설계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며,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설계도를 출력해서 제작 공장을 방문하였다. 하지만 제작 공장의 사장은 별로 길게도 얘기하지 않고 예약된 물량이 많아서 만들어줄 시간이 없다며 거의 문전박대 수준으로 거절하였다. 당시 속옷 사업으로 주가를 올리던 주병진 씨가 초창기 팬티 한 장 만들어 줄 공장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게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와 꽤 먼 거리에 있던 제작 공장에서 소득 없이 그냥 돌아갈 수 없어 무작정 사무실에 앉아 기다리며 약간의 땡깡(?)을 부렸더니 결국 제작을 해주기로 하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작은 규모의 제조업 공장 사무실에는 대부분 커피믹스와 종이컵을 비치해놓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당시 나이 어린 내가 그래도 조카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커피를 타주며 이런저런 좋은 얘기를 해줬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약간의 실랑이를 통해 시제품의 제작이 가능하다 면 행복한 일이지만 문제는 이후에 발생하였다. 커피 믹스의 대화를 통해 제작업체 사장과 그래도 나름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일주일 뒤에 제품을 찾으러 갔다. 겉으로 보니까 도색까지 잘 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조립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부품끼리의 나사 구멍이 일치되지 않아서 조립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설계도대로 제작했다는 공장의 말에 몇 번이고 설계도를 다시 봤지만, 조립이 안 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황하고 있던 나에게 제작업체 사장은 당연하다는,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애매한 대답을 했고, 재제작은 절대 불가라는 말에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시제품의 조립은 완성했지만, 만약 양산하게 되었다면 더 큰 어려움 이 생겼을 게 명확하다. 지금 생각하면 이는 비록 시제품이지만 제조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결과였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공차에 대한 경험과 제조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고, 제작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협의와 문제 발생 시 대응하기 위한 사양 정리 등 모든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례 이지만, 많은 스타트업들이 이와 유사한 어려움을 시제품의 제작과정부터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환경 탓을 하며 제조업을 포기하기도 하고, 제조가 쉽거나 필요 없는 제품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제품의 제조가 필요한 스타트업을 계획하거나 시작했다면 제품의 제조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시제품 제작과 양산에서 시행착오와 비용 낭비를 줄일 수 있다. 


2. 다품종 vs 단일품종 


 스타트업도 결국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제품의 생산단가를 최대한 줄여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해서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 유명작가의 그림처럼 고부가가치의 제품이라면 소량만 판매해도 기업이 유지가 되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생태계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기업들은 자체 공장과 인력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겠지만 스타트업은 생산량을 결정하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개별 고객의 니즈에 맞게 주문자 방식으로 다품종 소량생산하고 싶겠지만 현실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이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 사실 다품종 소량생산을 이야기할 때 소량에 대한 정의는 상대적일 수밖 에 없다. 이제 막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다품종 소량생산과 여러 성공적인 기업 사례에서 등장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은 그 양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하루 1,000개의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5개의 품종을 생산한다면 평균적으로 품종마다 200개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200개도 대량 생산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하루 200개의 제품도 만들기 버거운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5개의 품종을 제공하려고 한다면 생산단가를 맞추기부터 쉽지 않을 것이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단일 품종이 다품종보다 성공한 사례들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 국내에서 출시되는 휴대폰의 모델 수는 회사마다 보통 100종이 넘었다. 하지만 애플은 단일 모델로 휴대폰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다. 어릴 때 가전제품의 매장에 들렀을 때 제품들이 마치 립스틱 매장처럼 색상별로 전시되어 있던 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다이슨의 청소기가 색상별로 다양하게 진열된 건 상상하기 힘들다. 오히려 혁신적인 제품들은 단일 품종을 통해 소비자의 니즈를 리딩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야심차게 밀던 3D 프린터를 통한 주문형 제조 공장은 이제 더는 심각하게 논의되지 않으며 오히려 금형 기술의 중요성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단일 품종으로 금형으로 찍어내면 생산성을 높여 생산단가를 줄일 수 있고 생산 중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종류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을 하면서 다품종으로 가져간다는 것은 매우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며 단일 품종으로 집중하여 시작하는 것이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3. 양산을 위한 제조공정


 스타트업을 하면 제품 개발에만 집중하여 제조와 관련된 일을 등한시할 수 있다. 개발만 완료되면 제품의 생산은 좋은 공장 찾아서 비용을 지불하고 의뢰만 하면 자동으로 되는 것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들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의뢰를 받은 공장에서 완벽하게 제품을 만들어줄 확률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제조공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품을 개발한다면 제품 설계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야심 차게 설계한 제품이 제조가 어렵게 설계되어 제조공정 중 불량이 많이 발생하는 제품이 될 수도 있고 불량이나 고장이 났을 때 수리가 어려워 폐기해야 하는 제품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 TV에 소개되어 관심 있게 본 스타트업이 있었는데 얼마 전 기사를 통해 사업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가 사업을 포기하게 된 이유는 제조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제대로 된 제품을 양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인터뷰 과정에서 국내의 제조업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한 마디로 본인들의 제품은 완벽한데 의뢰받은 공장에서 제대로 제품을 못 만들어줘서 사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는 얘기였다. 이는 제조 경험이 부족한 스타트업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스토리이다. 반면 위탁생산을 잘하는 기업이 개발역량까지 갖추면서 탄탄하게 성장하는 때도 있다. 보통 어떤 성공적인 제품이 나오면 개발에만 관심이 집중되지만, 양산을 위한 제조과정 또한 개발만큼이나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제품의 품질은 제조과정에서 결정되고 적절한 공정이 개발되지 않는다면 품질 문제가 많은 제품이 시장에 출시될 수도 있다. 유능한 식당 사장이 주방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는 것처럼 제조공정을 무시한다면 이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자사의 제품 수준을 타 회사에 의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을 하면서 제품의 개발과 같은 비중으로 제조공정에 대한 연구 개발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스타트업은 일반적으로 자원이 부족하여 대규모 투자를 받지 않는 한 자체 공장을 운영할 수 없다. 만약 제품의 제조를 외주로 진행한다면 생산을 완벽하게 제어하기 힘들고 외주를 맡은 업체가 원하는 품질로 납품하지 않는다면 회사의 사활이 걸릴 정도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자체 공장을 운영하면 시행착오를 통해 개선해나갈 수 있겠지만 제조공정에 대한 이해 없이 외주 생산을 한다면 깜깜이 생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최초 제품의 제조를 맡기기 전부터 공정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하여 제작 공장과의 협의에서부터 임해야 한다. 공정 중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양들이 명확하게 협의가 이뤄지고 문서화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이 불가할 수도 있다. 자원이 부족한 스타트업일수록 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수보다 양산과정에서의 실수가 훨씬 큰 손실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준비해야 한다.



조 환 철 경영학 박사

現) 삼성전자 글로벌기술센터

관심분야: 스마트팩토리, 기술경영, 조직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