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rail

[스타트레일+더밀크TheMiilk] AI때문에 발칵 뒤집힌 실리콘밸리

등록일
2020.08.11


“이건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다. 현실이다.”

“비트코인 이후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도구다.”

“(프로그램 개발에서 다른 영역으로) 커리어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다.”

안녕하세요. 오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배달해 드리는 더밀크입니다. 

최근 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AI(인공지능) 모델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AI 연구기업 오픈AI(OpenAI)의 언어 생성기 GPT-3(Generative Pre-Training 3)입니다. 오픈AI는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샘 알트만(Sam Altman)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 전 대표 등이 지난 2015년 12월 설립했습니다.

GPT-3는 학습을 거쳐 언어를 생성할 수 있게 하는 기계입니다. 여러 AI 모델 중에서 자연어 처리(NLP) 모델로 분류됩니다. GPT-3를 이용해서 뉴스 기사나 시, 소설도 쓸 수 있습니다. 특정 단어가 주어졌을 때 다음 단어가 나올 확률을 계산해 확률 높은 단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모델의 성능이 뛰어날수록 단어들의 조합과 문장의 적합성이 높아집니다.

핸슨로보틱스의 소피아

오픈AI가 실리콘밸리에 충격을 준 것은 지난 6월 5일 발표한 논문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기계의 작업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GPT-3가 작성한 기사와 인간이 쓴 기사의 저자를 알아맞히는 비율을 측정했는데, 약 절반 정도가 기계가 썼는지 인간이 썼는지 구분을 못했습니다. 오픈AI는 지난주부터 일부 멤버에게 GPT-3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를 공개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창업가 애럼 사베티(Arram Sabeti)는 GPT-3를 테스트 해본 후 “미래를 보는 느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20일 “충격적일만큼 훌륭하다”고 치켜세웠습니다.

GPT-3는 1750억개의 매개변수(parameter)를 갖추고 있습니다. 푸른색 그래프(GPT-3)의 정확도(성능)가 크게 향상됐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료: 오픈AI)
AI 때문에 발칵 뒤집힌 실리콘밸리

‘언어를 생성할 수 있는 기계’에 왜 이렇게 열광하는 걸까요? 바로 GPT-3의 잠재력 때문입니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알고리즘을 짤때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합니다.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파이썬(Python), C 등이 대표적이죠. 엄밀히 얘기하면 컴퓨터가 인식하는 건 숫자(0과 1)뿐이지만, 프로그램 언어를 기계어로 번역(컴파일링) 하면 컴퓨터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GPT-3이 향상된 자연어 이해·생성 능력을 바탕으로 프로그램 언어의 정확한 구문(신택스, syntax)까지 생성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개발자 커뮤니티가 술렁인 건 이 대목이었습니다. 나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프로그램 언어를 익혔는데, AI가 이 작업을 너무나 쉽게(?) 수행해 버린 것입니다. GPT-3의 출현으로 사람의 코딩(프로그래밍) 작업 없이 자연어를 이용해 앱을 개발하고, 간단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실제 이용 사례는 더 놀랍습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디빌드(debuild) 설립자 샤리프 샤밈(Sharif Shameem)은 지난 13일 트위터에 GPT-3을 이용해 간단한 디자인(레이아웃) 작업을 수행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이 영상은 일주일 만에 조회수 160만회를 넘길 정도로 큰 화제가 됐습니다.

GPT-3의 활용 사례. 코드 없이 글로만 써도 이렇게 구현할 수 있습니다.(출처: 샤리프 샤밈 트위터)

예를 들어 입력창에 ‘수박 모양 버튼’이라고 치면 GPT-3가 자동으로 코드를 생성, 즉시 수박 모양 그림을 띄웁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규모 순위'를 입력하면 국가별 GDP 규모 순서를 깔끔하게 정리한 표(그림)를 뚝딱 만들어 줍니다. 다소 복잡한 문장을 입력해 구문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수정해 오류를 해결(디버깅)할 수 있습니다. 샤밈은 “정말 놀랍고 인상 깊다. 매일 GPT-3의 능력을 깨닫고 있다”고 감탄했습니다.

개발자가 사라진다?

실리콘밸리에서는 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자 “‘노코드(No-code, 코딩이 필요 없는 개발)’, ‘오토 머신러닝(AutoML, 자동화된 머신러닝)’ 트렌드로 프로그래머 직군이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단순한 일을 대체하면서 소위 ‘블루칼라’ 직업 뿐 아니라 금융, 변호사 등 화이트 칼라 직업도 사라지게 만들 것이란 전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들(개발자)’도 대체할 수 있다는 예측입니다. 이런 전망 속에서 GPT-3까지 등장, 결정타를 때린 셈입니다.

페이스북이 인수한 VR(가상현실) 스타트업 오큘러스(Oculus)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존 카맥(John Carmack)은 20일 트위터를 통해 “나는 프로그래밍 자동화와 관련한 AI 연구에 맹점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최근 우연히 GPT-3이 코딩을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고 말았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AI가 쉽게 인간 개발자를 대체할 순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개발자들은 계속해서 높은 수준의 기획, 개발 작업을 수행하고 AI에겐 단순 작업 등 사람을 돕는 보조 역할을 맡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오픈AI의 공동창업자인 샘 알트만 CEO도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트위터에 “GPT-3에 지나친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 칭찬은 감사하지만, GPT-3는 여전히 가끔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약점을 갖고 있다. 아직 우리가 알아내야 할 것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포브스지는 “GPT-3의 능력과 한계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와 과장이 있다"며 “GPT-3이 할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GPT-3에 대한 기대는 아직 과하다"고 밝힌 샘 알트만

리서치 앤 마켓(Research & Market) 보고서에 따르면 NLP 시장 규모는 2019년 102억달러(약 12조2000억원)에서 2024년 264억달러(약 31조6000억원) 성장할 전망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작년 7월 오픈AI에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를 투자, 오픈AI의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줌 피자와 카페 X의 교훈

인간은 고부가가치 작업을 수행하고, 기계는 단순 작업을 할 것이란 전망은 로봇 시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기계가 수행하는 건 업의 본질이 아니며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기보다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 힘든 일을 맡아준다는 개념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로봇 서빙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s)를 운영 중인 하정우 대표는 더밀크와의 밸리토크 인터뷰에서 로봇이 피자를 만드는 줌 피자(Zume Pizza, 현재 Zoom으로 사명 변경)를 언급했습니다. “줌 피자의 실패 요인은 한 가지였다. 피자가 맛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피자 배달 사업을 접고 직원 80%를 해고하는 등 위기에 몰린 배경엔 ‘외식업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분석입니다. AI, 로봇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 기술이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로컬모션'(Localmotion)의 저자이자 포브스 기술위원회 위원인 알렉스 바르세기안(Alex Barseghian) 역시 로봇 바리스타를 도입한 카페 X(Cafe X)의 실패를 언급하며 “커피숍의 따뜻함은 인간과의 상호작용에서 나온다. 카페 X는 지나치게 앞서 갔다”고 지적했습니다. 기술이 업의 본질이 아니라면 첨단 기술을 적용할 수 있더라도 보조 수단 수준으로 활용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입니다.

'로봇이 만드는 피자'로 화제가 됐으나 실패한 줌 피자(Zume Pizza) (사진/손재권)

꼭 필요한 영역에서만 인간을 대체하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인간을 돕는 로봇으로 차별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어로보틱스는 이런 차별화 전략으로 팬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3200만달러(약 383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하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오히려 손님들이 로봇을 더 원하고 선호하는 시대가 됐다. 로봇이 식당 종업원들의 일자리를 가져갈 것으로 예측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외식업의 본질을 알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공지능 개발과 적용은 한국에서도 큰 화두가 됐습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는 점차 인공지능의 무제한 개발보다 역작용을 최소화하고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위한 인공지능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


‘스타트레일 매거진’에서는 실리콘밸리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더밀크(TheMiilk)에서 제공받아 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 


더밀크 TheMiilk 


더밀크는 경제 및 테크 분야에서 사실에 기반한 진짜 정보를 만들어 배달하는 실리콘밸리 기반 미디어입니다. 미국 경제 및 실리콘밸리 테크 스토리를 주 4회 이메일로 배달하는 ‘뷰스레터(ViewsLetter)’와 유튜브 경제방송 ‘미국형님’을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youtube.com/themiilk 


(비즈니스 제안, 제보 및 구독) jaekwon@themiilk.com